타리스만

안나 카레니나 (톨스토이) 사랑과 결혼의 현실,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모양새지만, 불행한 가정은 그 불행의 이유가 저마다 다르다.

 

첫 문장에 번개를 맞은 듯 꽂혀서 읽게 된 안나 카레리나. 이 첫문장은 세계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첫문장으로 꼽힌다. 소설가가 작품의 시작을 얼마나 머리싸매고 고민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작가가 이 첫 문장을 완성한 후 얼마나 큰 희열을 느꼈을지 상상도 안간다.

 

안나 카레니나는 1877년 러시아 대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1828~1910)'가 쓴 소설이다. 19세기 최고의 사실주의 소설로 꼽히는데 그만큼 당시의 시대상이 생생하게 현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명작이어도 읽는이의 그릇이 수용하지 못하면 소용없는 법. 내가 딱 그런가보다. 

 

구글 검색에서 가장 상위에 나오는 안나 카레니나 소설 리뷰를 읽어보니 어떤이는 한달에 걸쳐서 안나 카레니나를 한문장 한문장 음미하며 읽고 미치도록 뜨겁고 강렬한 생명력을 느낀다고도 하는데,,,

 

나는 빌려놓고 장기연체되고 있는 안나 카레니나를 빨리 '처치'하기 위해 작정하고 카페에 앉아 단숨에 읽어내렸다. 그러다보니 톨스토이가 그려낸 시대상과 입체적인 인물들의 내면묘사가 광활하게 와닿기에는 확실히 부족했다. (왜 떠맥여줘도 못먹니)

 

빠르게 읽으며 단편적으로 받아들였음에도 안나 카레니나는 많은 부분에서 나의 생각회로를 강제가동시켰다. 확실히 사랑과 결혼, 사회적 규약과 욕망 본연의 갈등, 삶과 죽음의 의미 등 여러가지에 대해서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문해보게 만든다.

 

레빈이 보는 농부부부의 행복. 그것이 아마 작가 톨스토이가 갈구했던 웃음꽃 넘치는 평범한 가정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도시 귀족들은 사교계니 뭐니 하면서 허세부리며 잘난척들 하지만, 결국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저 별볼일없는 농부 가족보다 행복하지도 못한 사람들.

 

안나와 브론스키가 불꽃같은 사랑을 시작했지만 꺼져가는 장작불처럼 금새 식었던 것도 그렇다. 애초에 상류사회에서 거들먹거리며 살아야만 삶의 활력이 생기는 관종들인데, SNS도 안하고 집에만 쳐박혀서 쥐죽은 듯이 살려니 행복에 대한 의문이 생길만 하지.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춤을 추고, 가슴가득 충만한 설레임을 안고 서로에게 좋은말만 할 때는 누구나 신나지. 시간이 지나고 다투기도 하고 상대방이 떽떽거리기도 할 때 그런 갈등이 현명하게 잘 해결되는지, 감당이 되는지가 사랑의 지속성을 시험한다.

 

사랑의 시작은 용기였겠지만, 행복의 지속은 이해에서 나오는 것이니깐.

 

안나는 굉장히 매혹적이고 보수적인 시대의 관습에 억눌린 여인네로 그려져있지만, 내가 봤을때는 절대 함께해서는 안되는 '결여인간'이다. 어딘가 감정의 한 귀퉁이가 상실되어 항상 불안정하고 주변 사람들을 파멸로 함께 이끄는 결여인간.

 

결국 스스로 불행하다고 세뇌하며 끝없이 사랑을 확인하려는 안나에게 브론스키도 인내심이 바닥에 다다르며 지치게 된다. 모든 것이 암울하게만 보이는 그녀에게는 푸른 하늘조차도 날카로운 비수처럼 와닿는다.

 

"사람들은 저 하늘같이, 저 푸름같이 냉정할 것이리라."

 

사랑이 식었다가 카레닌이 산후 안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용서하는 모습에서 다시 질투를 느끼고 안나에 대한 사랑이 불타오르는 브론스키 역시, 그저 가질 수 없던 남의 떡이 더 맛있어보였던 것 뿐이다.

 

안나를 위해 모든걸 희생하고 그녀만 바라볼 각오까지는 없었고, 적당히 그녀를 빼와서 자신은 예전처럼 사회생활 잘 하고 사교계에서 떵떵거리며 사는것을 원했다. 

 

사랑. 불 속에라도 뛰어들 것처럼 말하지만 사랑이 현실이 되었을 때 우리는 한가지 문제에 직면한다. 그것은 바로 '선택'을 해야한다는 점이다. 선택에는 때론 희생과 책임이 따르고 그것은 기대했던 것처럼 조건없는 무조건 행복과는 거리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그게 현실이다.

 

레빈과 키티의 꽁냥꽁냥한 러브 스토리는 그가 꿈꿨던 평범한 농부가족의 행복과 닮아 있다. 탁자위에 초성퀴즈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두번째 청혼에 성공하는 장면은 너무 낭만적이고 뭉클했다.

 

요즘에는 다들 이미 결혼을 약속한 상태에서 뻔한 이벤트와 다이아반지 들이미는 행사치레로 프로포즈를 하는데, 정말 상대방의 마음을 모르는 긴가민가 불안한 상태에서 떨리고 설레이는 도전으로써의 청혼. 멋지다.

 

결혼식 반지건네다 어리숙해서 식장이 웃음바다가 되는 것도 얼마나 인간미넘치나. 웃음으로 함께한 순간들은 시간이 지나도 두고두고 두 사람만의 평생 추억이고 안주거리가 된다.

 

물론 그들도 남들과 똑같이 결혼 후에 오는 다툼과 갈등, 권태를 겪지만 슬기롭게 극복하고 아이와 함께 더 끈끈하게 이어지며 행복의 종착역을 향해 순조롭게 항해한다. 사랑이 호수 위에 떠있는 보트의 아름다움을 쫓는 것이라면 결혼은 직접 보트를 타고 힘들게 노를 저으며 나아가는 것이다. 과정 그 자체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가 직업을 갖던지 집에서 육아에 전념하던지 뭐가 됐든 남자보다 사회의 문턱으로 들어갈 기회는 적다. 그래서 아내가 육아를 한다면, 특히 키티처럼 남편만 보고 시골에 따라온 경우라면 더더욱 아내바라기 하면서 알뜰살뜰 챙겨주어야 한다.

 

레빈을 통해 톨스토이가 느꼈던 삶과 죽음, 신에 대한 성찰이 안나 카레니나 후반부에 고스란히 나타나는데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구구절절 설명충처럼 생각을 써놔서 재미가 떨어지지만) 결국은 뭐가 됐든 내 내면에 있는 선을 따라서 착하게 열심히 살면 된다는 것이다. 성선설?

 

아무튼 그렇게 이뤄낸 성공적인 그들의 관계는 키티가 아이에게 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렴 하고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잘 나타난다. 레빈에 대한 키티의 사랑과 존경, 아이에 대한 애정, 그들 가정의 행복 모든것이 녹아있는 장면이다. 내 아내가 아이에게 그렇게 말해준다면 그것만큼 뿌듯하고 힘나는게 또 있을까.

 

아기가 젖을 물리는데도 못찾고 한참 울다가 마침내 먹으면서 조용해지는 묘사는 아이를 키워보지 않으면 절대 쓸 수 없는 글이다 하하. 우리 아가의 귀여운 모습도 떠올라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 소설 읽을때는 아무렇지도 않더니 리뷰글 쓰면서 우리 가족을 생각하니 눈물 찡해지려 하네.

 

중국드라마 아적전반생 볼때도 느꼈지만 어떤 다른 나라의 생활모습과 사고방식을 이해하려면 불륜 작품을 보는게 최고인 것 같다. 왜냐면 불륜 내용이 나오는 작품에는 인물의 묘사부터, 가정 이야기, 직장 이야기, 사회 이야기가 모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바람피는건 정말 유전자가 있는게 아닌가 싶다. 극중에서도 레빈과 키티 가족은 다 정상이고 오블론스키와 안나 남매는 서로 번갈아서 외도를 하고... 콩가루 집안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녀.

 

남녀가 만났을 때 상대방의 얘기를 수줍게 미소지으며 잘 들어주고, 공통 관심사나 취미가 잘 맞고 대화가 잘통하면 쉽게 호감을 느끼고 빠져들기 마련이다. 안나가 레빈을 의도적으로 떠본 것처럼. 하지만 그게 그 사람과 평생을 헤쳐나갈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요소는 못된다.

 

평생의 동반자를 고른다는 건 일을 할 때 합이 잘맞는 사람을 찾는 것과도 비슷하다. 사사건건 부딪히지 않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타협점도 잘 찾는 관계. 현실은 같이 애기 똥귀저기 갈고 목욕시키고 분유타고 그런거 하면서 얼마나 즐겁게 참고 할 수 있는지에 달렸으니깐.

 

그런 현명하고 너그러운 사람과 만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살았고 가치있는 삶일테지.

 

안나 카레니나는 영화로도 많이 제작되었는데, 우리나라 버전으로도 한번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내가 안나처럼 검은색 드레스가 잘 어울리는 사람을 한 명 아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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