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해, 신세계의 원조격 홍콩 느와르 (Last Tycoon, 2012)
(스포일러 주의)
홍콩 여행을 갔을때 느꼈지만 중경삼림에 나와서 유명해진 곳이라는 청킹멘션은 이미 오래전의 영화에서 풍기던 그 애잔함과 공허함이 사라진지 오래다. 그저 제니베이커리에 들러서 선물용 쿠키나 사가는 관광객 코스가 되어있을 뿐. 오늘날의 강남역 지오다노 같은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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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리단길 맛집 중경삼림 느와르를 느낄 수 있는 로스트인홍콩
사실 나도 잘 생각이 안나는데 이 핫플레이스 용리단길에 놀러오는 젊은 세대는 아예 본적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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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같은데 가서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뿐 ㅎㅎㅎ
그만큼 홍콩 느와르라는 것은 이미 추억 속에 존재하는 장르이며 어릴 적 보았던 홍콩영화에서의 짠한 도시의 외로움과 그 속에서 위태롭고 간지나게 살아가는 주윤발같은 배우들의 모습은 기억 저편에만 남아있다.
그런데 이번에 영화 대상해를 보면서 정통의 홍콩 느와르를 다시 보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어두칙칙한 분위기가 싫지 않게 감싸면서, 인물들의 삶에 녹아있는 사연과 한들이 보는이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바로 그 옛날의 느낌이다.
요즘의 홍콩 느와르를 표방하는 영화들이 추억회상 정도의 한계에 부딪히는데 반해 간만에 꽤 잘 표현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1910년대와 30~40년대의 일제 침략기를 오가며 보여주는데, 그 격변의 시기에 상하이의 건달로 성공한 주인공 성대기와 주변 인물들의 갈등이 주된 줄거리이다. 성대기라는 인물의 젊은 시절은 황효명이, 나이든 후에는 주윤발이 각각 연기를 했다. 그리고 대부 격인 왕보스 홍수정 역에는 홍금보가 과거/현재 상관없이 역할을 맡았다.
젊었을때 황효명과 홍금보의 차이 때문에 나중에 주윤발이 나올때도 왠지 모르게 나이 차이가 되게 많이 날거라고 느꼈었는데 프로필을 보니 홍금보 52년생 주윤발 55년생으로 실제로는 3살밖에 차이가 안난다. 헛...
평범하게 과일집에서 일하고 있던 성대기는 과일집 사장이 마누라 불륜현장 덮치러 가는데 따라갔다가 졸지에 살인누명을 쓰게 된다. 불륜하던 놈이 총으로 사장을 쏘고 난간에 떨어져 정신을 잃었던 성대기가 깨어보니 누명쓰고 감옥에 있는 황당한 상황...
근데 위 사진의 맨오른쪽 인물인 모개장군이 마침 한 방에 있었고, 그를 탈출시키려 오는 부하들 덕분에 덩달아 같이 살아나게 된다.
하지만 모개는 단순히 살려만 주는 것이 아니라 간수를 쏘라고 살인을 강요하고, 총으로 사람을 쏜 성대기는 그 후 건달의 세계에서 살아가게 된다. 지금 생각하니까 뭔가 좀 뜬금없는 개연성이긴 하다. 모개장군은 성대기에게서 호랑이를 느끼고 그를 살려준 것일까, 그렇다면 왜 계속 자기를 위해서 일하게 하진 않았을지도 의문이고.
한편 누명을 쓰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기 전에 성대기는 사랑하는 여인 엽지추가 있었다. (뭐 여기 여배우들은 죄다 조연으로 표시되있넹; 누군지도 모르겠다.)
지추는 경극 배우가 꿈이어서 북경에 공부를 하러 가고, 성대기는 홍수정 밑에서 건달로 입지를 굳힌 후 그녀를 찾아가 다시금 사랑을 약속하..........려던 찰나 괴한의 습격을 받게 되고, 다 총으로 쏴죽인다. -_-a
결국 엽지추는 자기가 알던 성대기가 너무도 무서운 세계에서 살아가는 모습으로 돌아온 것에 이질감과 두려움을 느껴서 떠나버리고, 그렇게 애들 대학보낼 정도의 세월을 서로 떨어진 채 살아간다.
각자 따로 결혼도 하게 되는데, 여기서 눈에 띄는 점은 성대기는 또다른 배우인 아보를 만났고, 엽지추는 학자같은 스타일의 남편과 결혼한 것이다. 엽지추는 성대기에 실망하고 충격받아서 정반대의 얌전한 이미지인 사람과 만났고, 성대기는 그녀를 잊지 못하는듯 (예쁜) 배우인 여자를 만났다.
특히 엽지추의 결혼이 신문에 실린걸 본 후 자기도 아보에게 청혼을 하는 장면은 대건달답지 못한 치졸함이 엿보였다. 성대기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나중에 모개장군에게 딸려가는 희생도 감수하는 아보인데 ㅠㅠ 남자는 자기 좋다는 여자가 소중한 줄 알아야됨 역시...
세월이 흘러 대상해 극장의 꼭대기에 서서 모두를 내려다보리라고 다짐했던 성대기는 소망을 이루고, 그에게 예를 표하는 수많은 부하들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마치 한국영화 신세계에서 본 이정재의 라스트씬을 떠올리게 했다.
신세계가 건달세계에 경찰까지 엵여서 속이고 배신하는 암중모략의 전쟁터를 보여주었다면, 대상해는 오히려 건달이 가진 의리와 충심을 부각시켰다고 할 수 있다.
언뜻보면, 뭔가 줄거리가 큰 맥락이 없고 다소 오락가락하는 느낌도 든다. 로맨스 나오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건달되고, 건달 세계에서 칼부림하며 살아가는 모습도 딱히 어떤 의미가 부여된건지 모르겠고 (그냥 이렇게 살아왔다는 정보전달뿐?)
그리고 옛 연인과 다시 재회를 한 후 될듯 말듯 애간장만 태우면서 한편으론 그 남편의 수상한 정체에 초점을 맞췄으나 결국 나쁜놈도 아니었고;;; 후반은 일본침략에 맞서는 애국코드로 가버리고...
여인들과의 떰띵, 건달로의 성장기, 일본침략기의 시대상 등 너무 여러가지를 다 담아내려고 욕심을 부린걸까. 신세계가 하나의 잘 짜여진 시나리오하에 완벽한 모습으로 영화를 풀어나갔다면, 대상해는 여러 에피소드들의 나열같은 구조라서 어딘지 모르게 허술한 느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고 끝까지 보게 되는 원동력은 바로 홍콩 느와르가 가져다주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 것 같다.
1900년대 초반 상해의 뇌쇄적인 분위기에 흠뻑 취해보기 좋은 영화, 대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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