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리스만

리니지2 바츠해방전쟁, 당신이 혁명군 대장이라면?

 

누군가는 다스리고, 누군가는 복종한다.

 

역사 속에서 언제나 인간은 그렇게 살아왔다. 집단을 이루어 살기 시작하면서 다른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더 크고 강력하게 규합된 조직을 이루어야 했다. 일사분란한 지배체계 시스템을 통해 타 조직, 국가를 무너뜨리고 더욱 큰 세력과 지배체계를 확보해나갈 수 있었다. 최초의 지배라는 것은 그렇게,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탐욕스런 동물이다. 남보다 더 위에, 더 많이, 더 오래 누리고 싶어한다. 나만 가질 수 있는 것을, 또는 남만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는다. 훔친다. 가질 수 없다면 부순다.

 

만인의 호응을 얻어내는 대의명분으로 온몸을 휘감고 있더라도, 결국 그 속내는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한 욕망으로 뼛속까지 사무쳐있다. 우리를 위해 마련된 자리는 나를 위해 쓰여지는 무기가 된다. 지배하고, 유지한다.

참는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으니까. 그냥 그런거라고 들었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배웠으니까.

 

죽는다. 형제가 죽고, 친구가 죽는다. 원래 우리는 그렇단다. 자식을 잃고 부인을 빼앗긴다.

 

죽었다. 눈은 뜨고 있지만 나는 죽었다. 칼을 뽑는다. 붉은 깃발 아래에 모여 나를 죽인 놈들에게 칼을 겨눈다.

 

보이지 않는다. 눈 앞에 있는 것은 나처럼 소중한 것을 빼앗긴 또다른 사람. 그렇게 서로가 싸운다. 체스판 위에 놓여진 말들처럼 누군가의 두뇌에 의해 서로를 죽인다.

 

[ 1789年 10月 프랑스 베르사유 혁명]


과연 그것이 민중의 의지로만 일어났던 일이었을까. 반집권 세력의 수뇌부는 왕의 머리가 단두대 아래에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차도살인(借刀殺人)과 무중생유(無中生有) 계략의 완벽한 성공에 미소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모든 것을 잃고 목이 잘리고, 누군가는 피묻은 손을 바라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구석에 숨어서 와인 잔을 기울이고 있다. 그 결과 무엇이 바뀌었을까? 똑같다.

대중의 사회 정치적 의식이 진화한 것보다 (사실 전혀 없다), 기득권 층의 지배 기술의 발전이 더욱 놀랍도록 진보해왔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아예 구조적 모순을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가지지 않게 하거나, 두꺼운 정보의 장막 속에 진실을 왜곡시켜 꽁꽁 숨겨놓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또한 그들은 과거의 경험들을 통해서 서로가 통제권을 가지고 싸우더라도 그 파이 자체가 서민들에게 넘어가는 잘못만은 하지 않도록 암묵적인 불문율을 가지고 있다.

피를 부르는 뿌리부터의 봉기는 앞으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지배층의 권력 유지는 지구가 멸망하는 날까지 이어질 것이다. 구조에 반(反)하느니 따르는 것이 현명한 경쟁체제를 강화하고, 대중이 (심지어 똑똑한 사람이라도) 알아챌 수 없는 첨단 금융공학 기법들을 동원하여 가진자가 결국 더 많이 가지게 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과거에는 착취를 못버티면 끝내 창을 쥐고 울부짖었다면, 이제는 무엇을 빼앗기는지도 모르는 채 적당량의 수혈을 당하며 평생 살아간다. 매트릭스에 나오는 기계요람의 핏덩이들처럼.

 

 

현실에서 재현된 핏빛 혁명의 배경

그러나 현실에서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핏빛 혁명이 온라인 게임상에서 재현되는 사건이 있었다.

 

2004년 리니지2에서 일어난 이른바 바츠해방전쟁이 그것이다. 몬스터 잡아서 레벨올리는 온라인 게임 따위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살펴보자. 

 

엔씨소프트가 만든 게임 리니지는 파티플레이를 통한 레이드 등으로 여성 유저에게도 친숙한 WOW와 달리 남성적이고 전투적인 게임방식을 채택하여 인간 본연의 욕망을 여과없이 보여줄 수 있는 가상세계를 구축하였다.

요즘 트위터다 뭐다 소통이라는 단어에 많이들 열광하고 있지만, 이미 국산 온라인게임 초창기 작품들에서는 그러한 기능들이 매우 충실하게 탑재되어 있었다.

 

트위터로 누굴 찾거나 실시간 정보를 얻는 가능성으로 그 우수성을 찬양하곤 하는데, 긴급한 혈액형 수혈을 공지하여 위급환자를 살렸다던지 형편이 어려운 부부 게이머에게 성대한 가상 결혼식을 치뤄준다던지 이러한 스토리텔링이 이미 10년 전에 게임상에 존재했음을 생각해보면 우스운 노릇이다.

이러한 소통의 기능은 혈맹이라는 조직구축 시스템을 통해 빛을 발하게 되는데, 일반 게임에서 친목을 도모하는 클랜의 개념을 넘어 하나의 군대 조직처럼 다른 세력과 전쟁을 하고 그 속에서 권력과 이권다툼까지 행해지는 실로 현실과 흡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성의 군주가 되어 세금을 징수하는 것으로 지배계층에 설 수 있고, 따라서 권력의 정점에 서기 위해 다른 세력과 동맹과 반목을 반복하게 된다.

 

 

DK 혈맹의 기득권 독점과 횡포

 

문제는 현실과 마찬가지로 게임 상에서도 탐욕스런 인간의 본성이 나타나는데 있었다.

 

리니지1에서 위세를 떨치던 Dragon Knight 혈맹(이하 디케이)은 리니지2의 출시와 함께 이전하여 초반부터 기세를 잡아갔다. 제1서버인 바츠서버에서 강력한 혈맹들과 함께 동맹 연합을 구축하고 지배 구조를 확립한 이들은 성을 소유하고 세금을 징수함과 동시에 양질의 사냥터를 통제하여 자신들이 독점하기 시작한다.

일반 유저들의 불만은 쌓이게 되었지만 상위 강대 혈맹들이 연합하여 지배하고 있는 체제 하에서 구조적 모순을 바꿀 방법은 없었다. 지배 연합에 대항하는 적대 혈맹들도 존재하였지만 이들의 세력은 상대적으로 열악하여 판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다 지배 연합의 하나인 제네시스 혈맹이 디케이 혈맹과 적대적 관계로 돌아서게 되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제네시스 혈원과 디케이 혈원과의 사소한 다툼이 그간의 불만(사냥터 통제권 배당 등)이 폭발하는 계기로 발전한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연합 혈맹들의 공격하에 제네시스 혈맹 단신으로 버티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반(反)디케이 동맹에 합류하게 된다.

 

어제까지 적이었던 이들의 연합은 마법사들의 모임인 해리포터 혈맹을 포함에 수십개의 여타 중립 세력의 가입으로 이어지게 되고, 지배계층에 대항한 이들의 싸움은 타 서버 유저들을 자극하여 수천명의 저레벨 캐릭터를 생성해서 전쟁에 참가하게 되는 상황으로 발전한다.

 

 

 

내복단의 참전과 승리 그 후

 

[ 바츠 해방 동맹군을 돕기 위해 저레벨 캐릭터를 생성하여 참전한 수천명의 타 서버 유저들 ]

수적으로도 힘으로도 강력했던 디케이 연합군이었으나 점차 열세에 놓이게 되고 반연합의 계속되는 기만전술과 맹공격에 마침내 소유하던 성들을 내어주고 패주한다. 까마득한 시간동안 지배해온 계급과 오래도록 피를 흘려 이루어낸 값진 승리였다.

 

비록 게임이지만 이러한 내용은 각종 뉴스기사 및 책으로도 출간되며 온라인에서 이루어진 역사적인 민중봉기로 회자되고 있다.

여기까지는 분명 감동적인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자 그러나 문제는 그 후, 여러 성과 각종 사냥터를 빼앗은 반 연합군은 분배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들의 전리품은 절대반지 만큼이나 매력적인 것이었고, 서로의 공로를 주장하면서 서서히 반목이 생기게 된다.

 

결국 오래지 않아 이들 세력은 내분으로 와해되고, 이권을 위해 예전 디케이 혈맹이 하던 악습을 그대로 반복하는 사례까지 나타나며 대의명분마저 잃게 된다. 그러다 결국 숨죽여 재정비하고 있던 디케이 연합군에 하나씩 다시 꺾이게 되었다.

이것은 혁명의 성공보다 어떤 의미에서 더욱 중요한 교훈으로 보인다. 수천명의 눈물을 자극했던 호소문으로 일어난 민중의 칼도, 결국 인간이 이기적인 욕망 앞에서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그것은 전쟁의 혼란 속에서보다 승리 후의 태평성대에 오히려 더욱 통솔과 결집을 약하게 만들었고, 스스로 몰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선도 악도, 옳고 그름도 없었다. 더 나은 힘과 부를 위해 가로막고 있는 벽과 싸운 것일 뿐.

만약 당신이 혁명군을 이끄는 대장이었다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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