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리스만

[분노조절장애] 집에 안식처가 아니라 전쟁터라면

보통이라면,
집은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안식처이다.

반복되는 바쁜 일상
중압감에 시달리는 직장생활

그러한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 집이 쉼터가 아닌 전쟁터가 되는경우
더이상 기댈곳이 없어진다.


눈코뜰새없이 바쁜 하루였다.
긴장되고 치열한 하루였다.

새벽 4시반 기상
공부할 것이 있어 졸린 눈 부벼가며 구글링하고
짬내서 운동도 하고
가족들 일어나기 전에 미리 씻고

회사에서 아침일찍 업무일정이 있어서
아이 어린이집 등원도 부랴부랴 서둘렀다.
깨워서 밥 먹이고 양치해주고 옷입히고 유모차태운뒤
인력거 밀듯이 어린이집까지 달려가서 넣어놓고
다시 정류장까지 달려서 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남들 다 코트입고 추워보이는데 나만 거친숨 몰아쉬며 땀을 흘리고 있다.

회사 도착후 빵하나 우유하나 그야말로 입에 쑤셔넣듯이 몇초만에 먹어치우고
오전 업무일정을 진행했다.

밥먹고 쉬는 시간에도 오후에 있을 임원 보고 자료를 수정하고
교통편으로 이동중에 만든 PPT를 출력해서 중얼중얼 발표 연습도 반복했다.
큰 실수는 없이 보고를 마친 뒤, 조금 일찍 퇴근했다.

집에 들렀다가 차를 가지고 어린이집에서 아기를 픽업
놀다가 부딪혀서 이빨이 다친 아이를 치과에 데리고 갔다.
다행히 크게 어디 손상된 것은 아니어서 시간지나면 잇몸 피멍은 가라앉을 거라고 했다.
진료 마치고 가글약 사고 다시 차태워서 집으로 귀가.

정신없이 보낸 하루
자의가 아니지만 열심히 살아낸 하루
오늘 할 거 다 해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고 긴장이 풀렸다.
시작은 이제부터였는데 말이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아내가 불소 도포는 했냐며 묻는다.
무슨 불소도포? 갑자기 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니 바로 안색이 변하면서 짜증을 내기 시작
그 특유의 상대방이 멍청해서 답답해 미치겠다는 태도로
제대로 기억하는게 뭐냐, 머리가 왜그모양이냐 등 온갖 비하하고 긁어대는 말을 쏴댄다.
중국어로는 发脾气,给我看脸色

갑자기 급발진해서 성질내는 모습을 대하니 나도 화가 확 솟구쳐올랐다.
아니 왜 들어오자마자 또 짜증이야! 하고 언성을 높이며 받아쳤다.
여기서 '또'가 중요하다. 또 그런다는게 내가 제일 지긋지긋한 부분이다.
영문도 모르고 일단 감정상하고 싸움부터 시작된 후에야 왜 그러는지 알았다.
문자로 치과 간 김에 불소 도포하라고 보내놨는데
그때쯤 나는 아기안고 진료보러 들어갈 때라 못봤던 것.

이미 성질은 성질대로 났는데 그 사실을 안다고 달라지는건 없었다.
문자를 지금봤는데 뭘 기억을 안해! 나도 계속 성질을 냈고
잇몸에 상처났는데 지금 불소도포를 하면 되겠냐 라고 아예 그 의견자체를 반박했다.
한편 아내는 내가 아기 픽업해가느라 유모차 어린이집앞에 놔둔걸 집에 갖다 놓으랬는데 자기도 하지 않았다.
너는 왜 안했는데 라며 계속 서로 상대 잘못을 지적했다.

이러다 또 다집어던지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면서
간헐적 폭발장애 (분노조절장애) 도지고 약먹어야될까봐
중간에 끊고 아기 챙기는 일만 마저했다.


돈까스랑 라멘 배달시키고
편의점에서 도시락 두개랑 햄버거에 빵에 청하 한병까지 사서
아기 밥 먹이면서
나도 소주 병나발을 불며 폭식을 했다.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없으니 몸을 상하게 하는 것으로 해결하게 된다.
그렇게 열심히 식단관리하고 운동하고 있었는데...
무언가 열심히 해오던 인생을 내려놓는 선택을 하는게 이럴때 내가 스트레스 푸는 방법인 것 같다.
뭘 다 버려버리던지 폭식폭음을 하던지 자해를 하던지 등등

열심히 살아냈다고 생각한 하루였는데
가장 개같이 마무리하는 하루가 되어버렸다.
아니 설령 내가 정말 문자를 보고도 까먹었더라도
그렇게 사람을 달달 볶아대면서 짜증나게 하는게 맞는건가

그냥 무시하고 참을수는 있다.
겉으로 잘못했다고 하고 대충 넘어가면서
마음쓰지 않고 내가 하려고 했던 일만 하는 식으로.
블로그 쓴다던지 게임을 한다던지 운동을 하던지 해서.
그렇게 하면 맞는걸까? 그건 부부라고 할 수 있나?
아예 말이 씨알도 안먹힐거 같아서 포기하고 껍데기만 있는 대화를 하는게?

공감도 없이 응원과 지지도 없이
마치 회사에서 마음에 안드는 사람 어쩔수 없이 같이는 있어야 될 때 최대한 거리두고 지내는 것처럼.
해결방법은 다 소용이 없고
회피하는건 그게 맞는지 모르겠고

아 짜증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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