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리스만

좋은 머리가 머리를 망친다.

어제도 잠이 부족해서 오늘은 일찍 자야하지만, 밀린 리뷰 올리다가 정작 쓰려던 글은 또 못써서 몇자 끄적일까 한다. 명색이 일기장인데 일기는 안쓰고 음식 사진이나 올리는데 열의를 쏟으면 주객이 전도되는 셈이니깐. 그리고 써야겠다 생각했던 것을 미뤄두면 뭔가 찝찝해서 불편하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두뇌로 대결하는 것은 언제나 자신이 있었고, 학업에 있어서도 다른 친구들 공부하는거 반만해도 비슷한 상위권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천재는 아니니까 나보다 뛰어난 사람 앞에서는 적당히 피할줄도 안다. 즉, 어설프게 좋은 머리로 적당히 주위의 기대만 충족시키는 수준을 했다.

 

기억이 가물한데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때 IQ 테스트 결과로 거의 150 가까이 나왔던 것 같다. 이후로 살면서 IQ 테스트를 다시 해본 적은 없는데, 아마 지금 재보면 110~120 정도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어린 시절에 가장 머리가 좋았고, 커가면서 지속적으로 점점 퇴보했다. 스스로도 그걸 잘 인지하고 느껴왔다. 문제가 뭘까.


나같은 성격은 절대 뭐 하나를 꾸준히 오래하지 못한다. 독기를 품고 악착같이 노력해서 성공해본 기억이 없다. 그냥 머리만 믿고 개기다가 마지노선이 되어서 부랴부랴 벼락치기를 해버린다. 그리고 시험이 지나면 머리속에서 리셋 시켜버리는 것이다. 남는게 없다. 

 

똑같이 90점을 맞더라도 80점에서 올리려고 악착같이 평소에 공부한 친구의 90점과, 100점을 맞을수도 있었는데 적당히 놀다가 90점만 맞은 나는 차이가 생긴다. 끝나고 나서 남는게 다른 것이다.

 

그리고 그게 1년, 2년 반복되다보니 나는 조금씩 뒤로 가고, 꾸준히 하던 친구는 어느샌가 앞서서 따라잡을 수도 없는 위치에 가 있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그때는 오히려 똑같은 시간을 투자해도 내 쪽의 이해도가 반도 안되는 절망적인 상황인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와도 같다. 주변의 경쟁자와 대결하는게 아니라 스스로의 기록과 싸웠더라면 훨씬 더 높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당히 부모, 친구가 생각하는 나에 대한 인식만 맞추면 되니까 딱 고정도만 하게되고, 말그대로 학교공부라는건 살면서 해야되는 '의무'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런 재미도 흥미도 못느꼈다.


살면서 딱 두번 공부가 재밌었던 적이 있는데, 수능을 3개월 전부터 제대로 맘잡고 공부했을 때와 대학교에서 전공과목을 재수강할때였다.

 

그동안 해왔던 벼락치기가 아니라 평소에 공부를 해서 머리에 쌓다보니 그걸 바탕으로 쭉쭉 나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시험이 되서는 따로 특별히 공부한 것도 없다. 푹자고 그동안 한만큼만 점수내면 되니까. 물론 그렇게 되었고.

 

하지만 평생 몸에 밴 습관이 어디 가겠는가. 아직까지도 완전히 고치지 못하고 있다. 입사시험을 볼 때도 서류전형 - 필기시험 - 면접의 프로세스 중에서 필기시험은 단 한곳도 떨어진 곳이 없다. 삼성, LG, SK 등에서 진행하는 필기시험은 IQ 테스트 비슷하게 각종 두뇌능력과 적성검사를 보는 식인데 그런건 자신있었다. 

 

그래서 또 우쭐했을까.. 석박사도 넘쳐나는 현업에 가서도 내 부족함을 직시하지 못하고 공부를 게을리 했다.

 

애초에 나보다 머리도 좋고 노력도 더많이 해서 지금부터 발에 불나게 뛰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사람들 투성이인데도. 하루하루 맡은 업무에 숙달되고 익숙해지니까 된 줄 알았다. 그러다 대리 진급을 하고 좀더 비중있고 책임감있는 일을 맡다보니 구멍이 드러나고 자격지심에 속이 상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었다 라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고 한다. 뭐가 되었든, 머리로 먹고사는 길을 택한 이상 머리를 쓰는 것은 검객이 검을 갈고 검술을 연마하는 것과 같은게 아닌가. 주어진 일 이상의 노력을 해서 보다 프로다운 레벨의 능력을 가지고 임하고 싶다.

 

딱히 이 분야에서 TOP이 되겠어 같은 목표가 아니라, 내가 답답해서 그렇다. 뭔가 모르고 꿀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이 싫다.

 

전부 마스터하고 손바닥 안에서 보면서 한량처럼 늘어져 있다가 필요할때 제깍 처리해버리는 해결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거저되진 않는다. 수면에 떠있는 오리처럼 아주 열심히 헤엄을 쳐야 겨우 떠있을 수 있을거다.

 

적성을 헤매거나 공부에 흥미를 붙이지 못했던 시절에 부모님의 교육방법을 비판한적도 있지만, 이제와서 그런건 다 필요없다. 맥여주고 키워놨으면 됐지 내인생 내가 알아서 사는거다.

 

게임이나 쳐하고 학교 땡땡이치면서 현실도피나 해온 주제에 누굴 나무란다는거야. 나를 망친건 나 자신이고, 돌려놔야 할 사람도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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