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리스만

죽으려고 살기를 그만두었다. 페미니즘과 남혐사이

뭔가에 관심을 가지면 초반에는 빠르게 습득하다가 금새 열정이 식고 어정쩡한 수준에서 그만둔다. 이것이 나의 특징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한 성향이다. 정치도 역사도 사회문제도 다 그런 식으로 접해왔다. 어떤 이슈에 대해 제대로 된 토론을 할 정도로 심도있는 지식과 견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페미니즘도 그렇다. 페미니즘. 여성 우월주의? 여성을 우선하고 존중하는거? 그냥 그런 뜻인가보다 라고만 알고 살아왔고 최근 붉어지는 각종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읽게 된 책 한 권 때문에 반강제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제목만 보고 집어들었다. 원래는 자살충동, 우울증 등 정신문제를 앓고 있는 나라서 죽음과 마주했던 사람이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가 궁금해서 읽으려던 것이었다.

 

제목만 보면 그렇잖아 뭔가 시한부 인생이라던가 점점 죽어가는 삶을 다시 일으킨 내용일 것 같은.

 

만약 책표지에 메갈출신 페미니즘 작가의 통렬한 사회비판. 이렇게 써있었다면 내 관심사와는 거리가 멀었을 테니 집어드는 일은 없었을것이다 ^^;; (메갈이 메르스 갤러리에서 시작된 단어라는 것도 이 책을 보고 알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자살하고 싶은 힘든 삶을 살던 사람이 극복해냈다 이런 얘기가 아니라, 평생 남성위주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고 불평등에 치여 살던 작가가 어떻게 그 구조에서 탈피하고 스스로의 삶을 찾게 되었는지의 이야기이다.

 

시작은 가족이었다. 아들만 오냐오냐하고 딸은 찬밥떼기이자 당연한 희생을 강요하는 어긋난 기대 속에서,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나온 뒤 강아지와 여자들끼리 의지하며 스스로 삶을 지탱하게 된 이야기이다.

 

결과적인 지금의 모습만 보면 범접하기도 어려운 극도의 남혐으로 완전무장된 가시돋친 여자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을 처음 만났는데 다짜고짜 남혐사상으로 공격을 해대면 뭐지? 하고 완전히 거리를 둬버릴테니까 보통은.

 

하지만 책을 보다보면 작가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의 과정이 처절하고 반복적으로 설파된다. 마치 영화 조커처럼, 결과보다는 과정에 초점을 두고 어쩌다 악에 받친 전사가 되었는지 당위성을 피력한다.

 

말하고 보니까 진짜 상당히 비슷한데...

조커가 왜 악당이 되어야만 했는지 그 과정, 그리고 마침내 조커가 된 뒤 자유와 해방을 만끽하는 장면처럼

이 책도 어떻게 남혐이 자라게 되었는지, 그리고 마침내 가족을 손절하고 자신의 방식을 찾자 삶이 평안해진 모습을 그려낸다.

 

뭐 사회의 남녀 불평등이야 사실이니까 보다보면 남자가 봐도 공감되는 부분도 많이 있다. 대부분의 문화예술 작품에서도 여자는 사랑을 찾아 나서야만 하는 존재처럼 그려지고 그저 스스로 뭘 하고 사는지만 비추는 일이 없다는거. 

 

남자만 나오는 이야기들은 많아도 여자의 이야기만 평범하게 다룬 작품은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 (수요를 고려해서 제작이 될테니 아마 그런 작품들은 보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겠지)

 

남녀 평등을 생각하는 그 사고방식조차 알지 못하는 불평등의 토대 위에서 진행되는게 현실이니까.

 

오랜 역사속에 깊게 뿌리내려진 남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여권신장이 되었다고 하는 현대 사회에서도 아직 많은 잔재가 남아있고 그런것이 서서히 고쳐지려면 남자 여자 역할이 박혀있는 구도가 아니라 여자도 그냥 그 사람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 평범한 스토리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

 

이런건 내가 봐도 대체적으로 공감하는 부분이다. 근본적인 남자는 어떻고 여자는 어떻고를 점점 탈피해야 그냥 그 사람 사람 자체로 대하는 세상으로 조금씩 바뀔테니. 

 

하지만 역시 다소 과한 남혐에 거부감을 느끼는 부분도 적지 않다. 시간을 두고 친해지지 않은 남자들은 여자를 곧 죽이거나 서서히 죽인다. 암보다 확실한 사망율. 아예 근본적으로 남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부분에서는 이 또한 또다른 갈등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는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물론 평화적으로 타협하려고 해서 안되니까 파업투쟁을 하는 것처럼, 여성인권도 가만히 있으면 우릴 물로보니까 싸워서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동등한, 제대로 된 평등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남성이 가지고 있던 파이를 빼앗겠다는 것인지는 좀 혼란스럽다. 

 

페미니즘 논란이 많았던 것으로 아는데 82년생 김지영도 언제 한 번 봐야겠네.

 

지나가다 다른 강아지한테 쫏쫏쫏 하고 소리내는 것도 혐오스러운 행동인가 보다. 혹시나 나중에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 ㅎㅎㅎ 이것도 남자가 보통 이런짓을 해서 역겹다는 것인지, 아니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남자가 그러면 역겹다는 것인지

 

마지막으로 남혐을 떠나서 부동산 공인중개사와의 안좋은 경험은 십분 공감한다. 이건 남자가 많으니까 남혐이 되었겠지만 부동산은 다 똑같다. 거기 아줌마들이랑 계약하고 하려고 해도 집주인 편만 들고 세입자는 돈내고 서비스 받는 고객이 아니라 무슨 아쉬워서 구걸하러 온 사람마냥 취급하는거

 

공인중개사 사무실 싹 다 없어지고 온라인 대기업 체제로 바뀌어버려야 한다. 카카오택시 쿠팡 처럼 부동산업계도 끼리끼리 작당하고 해쳐먹는 관행 사라지도록 시스템이 근본부터 바뀌어야 한다.

 

작가에게 저건 남자라서 그런게 아니라 부동산이 다 그래요 여자 중개보조원도 싸가지없고 막무가내인 사람 많고요. 라는 말은 해주고 싶다 ㅋ

 

 

 

죽으려고 살기를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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