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리스만

죽여보지도 않고 살인자의 기억법을 논하랴

보통 연쇄살인범은 남의 고통을 낄낄거리면서 즐기는 포악한 족속이거나 속을 알 수 없는 차가운 싸이코패스의 정신병자같은 인격체로 묘사되곤 합니다. 하지만 거기엔 오류가 있죠. 제가 보기엔 다분히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표현입니다. 대중이 그럴 것이라고 예상하고 기대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여줄 뿐인거에요.

 

이를테면 저처럼, 번듯한 직장을 다니면서 주말이면 애인과 데이트를 즐기는 아주 멀쩡하고 평범한 도시민도 있다는 거죠. 과격은 커녕 얌전한 성격에 그렇다고 싸이코패스와도 거리가  눈물펑펑 쏟을줄 아는 감수성 풍부한 남자.

 

누군가 제게 '왜 사람을 죽이는가?' 라고 물어본다면 딱히 명확하게 이유를 대답하기는 어렵울 것 같습니다만, 어렴풋이 속에 떠오르는 감정을 말하자면.. 음, 그것은 일종의 '포기'라고 하는 것이 가장 근접한 설명이 되겠네요.

 

두리뭉실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어요. 사람을 죽이는 과정이라는게 취미생활처럼 공식이 딱 정해져 있는건 아니니까. 그때마다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가지 떠오르는 충동때문에 때론 짧고 강렬하게, 때론 서서히 치밀하게 숨통을 옥죄는 겁니다.

 

일일이 기억하냐고요? 물론이죠. 어떠한 살인이던간에 지금까지 죽였던 일들은 모두 머리속에 남아있습니다. 비결을 묻는다면 역시나 잘 모르겠다고 밖에 답해줄 수가 없군요.

 

딱히 기록을 한것도 아니고 유치하게 피해자의 소지품을 간직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노력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기억의 창고에서 하나씩 꺼내올 수가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 아마 죽이는 상대의 마지막 표정이 전리품처럼 머리속에 기억되는게 아닌가 싶군요.

 

죽은 사람이 꿈에 나오거나 악몽에 시달리지 않을까 하는것도 전부 기우라고 해두죠. 잡힐까 조마조마하는 녀석들이나 홧김에 어쩌다 살인을 저지른 녀석들이나 귀신을 보는거지 어릴때부터 시체가 익숙한 저같은 경우엔 후유증은 그저 남얘기에요.

 

그저 덤덤히 저지르고, 복습하고, 수사망을 피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아예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스스로조차 속이듯이 지워버리는 겁니다.

 

음... 일전에 지하철에서 노인네에게 욕설을 퍼붓던 놈을 처단했던 적이 좋은 사례가 될 것 같네요. 해코지당할까 두려워 주변 어느 누구도 나서지 못하고 놈은 지세상인듯 활개를 치다가 목적지에 내리려고 일어섰죠. 사람이 많은 환승역이었습니다.

 

조용히 따라가던 저는 군중에 파묻혀가던 녀석이 계단 모퉁이를 돌아서기 직전에 품에 있던 매스를 꺼내 뒤에서 목 옆쪽을 한번 스윽 그어주었습니다. 아마 잠시동안은 무슨일이 벌어졌는지 짐작도 못했을거에요.

 

어버버 거리며 목을 부여잡고 벽에 기대 쓰러져가는 녀석을 잠시 바라보다가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유유히 빠져나왔습니다. 아무런 증거도 연고도 목적도 동기도 없는 살인이기에 범인을 잡는 것은 불가능했고 뉴스에서 잠시 떠들어대다가 이내 묻히더군요. 그도 그럴것이 수사된 내용이 뭐라도 있어야 기사를 내보낼텐데 아무 진전이 없었을 테니까요.

 

알고보면 정의로운거 아니냐고요? 저도 처음엔 이런 제가 마치 의협심에 불타서 못참는 건줄로만 알았죠. 하지만 살인을 거듭할수록 그런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어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이건 '포기'의 감정과 흡사합니다.

 

어른공경 안하고 공공장소에서 설치는 눈엣가시같은 놈을 제거해서 사회의 엔트로피를 돌려놓으려는게 아니라, 그저 그 개인에 대해 저 자신의 율법으로 '포기'라는 낙제점을 주었을 뿐입니다. 때문에 보통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을 죽이는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죠.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알게모를 위화감이 치솟으며 겉잡을 수 없는 분노가 생기다가 그게 차차 가라앉으면 얼어붙은 호수처럼 차가운 상태가 되어서 상대를 죽일 계획을 머리속으로 세우는겁니다.

 

물론 충동이 생길때마다 사람을 죽이진 않아요. 현대 사회에서는 살인이 가장 큰 죄악이기 때문에 추적의 눈초리가 매섭죠. 잡혀서 감옥에라도 갇히면 충동을 풀 수 없어 미칠테니 생각만해도 끔찍하거든요. 그래서 순간의 욕구보다 계획적으로 잡히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고, 여의치 않으면 과감히 미련을 버립니다.

 

이런 인터뷰는 처음이라 왠지 낯설고 피곤하군요. 이쯤에서 그만 마치도록 할까요.

 

아 그런데 기자님, 음료수는 손도 안대셨네요? 아까 땀도 흘리고 더워보이시던데, 버리긴 아까우니 한모금 드시죠?

 


 

 

살인자의 기억법:김영하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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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인터뷰하는 살인자가 된 것처럼 독특한 방식으로 리뷰를 써보았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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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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